시장세분화, 그리고 TAM-SAM-SOM

2018. 8. 13. 10:12Marketing

스타트업의 마케터로 일하면서 간단한 카피 작성에서부터 그 유명한 3C, STP, SWOT, 퍼포먼스 마케팅 전략까지 우리 서비스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내 역량 안에서 전부 다 시도해보았던 것 같다. 마케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마케팅 이론을 이해하는것도, 크리에이티브 영역도 아닌 서비스에 대한 이해였다. B2B SaaS 서비스를 마케팅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일줄 몰랐던 것이다. 매출을 올리고 유입을 늘리기 위해서 광고든 컨텐츠든 이것저것 안 해본것이 없지만 근본적으로 '그래서 우리 서비스가 누구한테, 왜 필요한데?' 를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마케팅 전략을 고민하면서도 이론적인 틀에 서비스를 끼워맞추기만 했다. 


 그러던 중 기획팀이 진행하고 있는 시장조사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이참에 마케팅팀에서도 시장을 잘 조사하면 고객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시장조사, 그까짓거 통계청 데이터를 긁어와서 우리가 먹을수 있는 시장은 이정도 쯤이야! 라고 명료하게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하는 업무는 그런 보고용 수치를 찾는것이 아니었다. 생각할수록 이 시장 규모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나는 이걸 왜 하고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획팀이 이미 도입해서 적용하고 있는 시장조사 방법, 스타트업에서 많이들 사용한다는 TAM-SAM-SOM 접근법에 도움을 받기로 했다.


출처 : www.thefabricator.com, Grow Your Business: Finding your best end market



 TAM-SAM-SOM은 투자자의 입장, 주로 벤처 투자자들이 바라볼 때 가장 적합한 시장규모 추정방법이다. 이때 TAM-SAM-SOM 에서의 TAM은 Total Addressable(Available) Market, 즉 전체시장을 의미한다. 전체 시장이란 우리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장의 규모를 말한다. 전체 시장 추정은 각종 통계자료로 쉽게 구해낼 수 있다. 광고업을 예로 든다면 TAM은 전체 광고 시장이 될 것이다. 단순하다.


 SAM은 Service Available Market, 유효 시장이라고도 하며, 위에서 추정한 TAM의 규모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BM이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한다. 전체 시장 안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고려한 조금 더 세부적인 시장 규모를 추정하게 된다. 일단 SAM을 추정하게 되면서 부터 우리 서비스의 비즈니스 모델과 우리가 궁극적으로 제공하고자 하는 서비스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는데, 서비스의 BM이 명확하게 세워지지 않았다면 BM도 BM이지만 그 데이터 값을 산출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 특히나 스타트업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매우 다양하고 창의적이어서 규모를 추정하는 것이 상당히 힘들다. 우리 서비스같은 경우도 일단 고객 세그먼트 자체가 너무나 광범위하고 비즈니스 모델도 확립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시장 규모 추정이 정말 난감했다.


활을 쏴야하는데 과녁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모르겠다..


가장 작고 확실한 시장 SOM은 Serviceable Obtainable Market, 유효시장 내에서 초기에 점유할 만한 수익 시장을 의미한다. TAM-SAM-SOM 접근법에서 SOM은 가장 중요한 시장이다. 초기에 고객을 유치하지 못하면 더 큰 시장으로 접근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SOM은 수익 시장이라고도 하고, 생존 시장이라고도 한다. 일단 서비스의 생존 시장 자체를 정의내려본 적이 없기때문에 규모를 추산해 보기도 전에 난관에 봉착했다. 결국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TAM-SAM-SOM의 형태는 그려내지 못했다. 숫자가 가득한 예쁜 테이블과 그래프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대실패였다.


 TAM-SAM-SOM 방식의 근본적인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시장 규모를 산정해 나가다 보면 그래서 이 숫자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비교해야 할 지, 과연 이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과정인지 의문이 들수밖에 없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럴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우리 서비스를 진짜로 좋아해 줄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 내가 생각하던 시장규모란 객단가와 여러가지 통계치를 고려한 '1조 규모의 시장' 같은 수치였는데, 그것이 마케팅에 있어서는 너무나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지 않은가? TAM-SAM-SOM 방식을 사용하는데 있어 그 규모를 추정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시장의 크기를 숫자로 도출해내고 크기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 규모를 산정하고 그 시장에 진입하고자 하는 의도를 얼마나 논리적으로 표현해내느냐의 문제이다.


 특히 SOM, 수익시장에서는 초기 서비스가 거점가능한 시장을 찾게 되는데 이 과정은 전적으로 추정과 가설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 가설을 얼마나 논리적으로 세우는 지가 SOM을 찾는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다. 나는 300만 개 사업체가 존재하는 시장의 10%를 점유할 수 있을거라고 규모를 산정했는데, 이 과정에서 왜 10%가 우리 서비스를 이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논거를 갖추지 못했다. 갖출수가 없었다. 결국 내가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아야 했던 이유는 우리 제품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 그리고 그 문제의 해결을 원하는 고객에게 집중해 시장을 정의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든 시장을 탐색하면서 더 많은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거꾸로 생각하고 있었다.


TAM-SAM-SOM 접근법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파악하고자,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초기 단계에 수익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생존 시장 발견 능력을 숫자로 입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소한으로 점유할 수 있는 시장은 얼마인지, 그래서 그 시장을 점유했을 때 얼마나 확장해나갈 수 있을 지 판단해야만 한다. 우리 제품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고객과 시장에 다가가 그 시장을 빠르게 점유해야 한다. 그렇다면 시장 규모를 측정해 보기 전에 일단 우리의 핵심 사용자, 핵심 퍼소나를 그려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퍼소나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와 결과를 근본적으로 고민해 보기로 했다. 제대로된 시장조사는 시작도 못했다. 그러나 단순히 마케팅을 위한 시장조사로 시작했지만 결론적으로 이 과정은 나에게 너무나도 큰 깨달음이었다. 마케팅은 어떻게 팔지만을 고민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내 고객과 제품을 깊게 이해하고, 공감하고, 해결해 주는 것이었다.